1919년 봄, 삼괴의 만세운동
삼괴(三槐)는 오늘의 화성시 우정읍·장안면 일대를 이르는 옛 이름입니다. 이 땅에서 일어난 만세운동과 그 뒤의 수난을, 우리가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.
- 1919년 3월 말 ~ 4월 초
화성 곳곳으로 번진 만세 함성
서울에서 시작된 3·1운동은 경기도 각지로 퍼져, 화성에서도 송산·발안·우정·장안 등지에서 잇달아 만세시위가 일어났습니다.
- 1919년 4월 3일
우정·장안의 만세 행진
우정면과 장안면 주민들은 마을마다 모여 장안면사무소와 우정면사무소를 거쳐 화수리 경찰관주재소로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. 이날 주재소가 불타고 일본인 순사가 처단되었습니다. 화성은 3·1운동 때 일본 순사 두 명이 처단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.1
- 1919년 4월
보복과 수난 — 수촌리·제암리·고주리
일제는 군경을 보내 보복에 나섰습니다. 수촌리에서는 마을과 교회 건물이 불탔고, 4월 15일 제암리에서는 주민들을 교회 건물에 모아 총격과 방화로 학살했으며, 이웃 고주리에서도 천도교인 일가가 희생되었습니다.
- 1919년 4월
세계에 알린 증언 — 스코필드
세브란스 연합의학전문학교 교수였던 캐나다인 프랭크 W. 스코필드 박사는 제암리·수촌리 현장을 찾아 사진과 보고서로 참상을 기록하고 국외에 알렸습니다.2 본부의 ‘스코필드 라이딩’은 그의 발걸음을 기억하는 행사입니다.
- 1919년 이후
지역 공동체와 종교 공동체의 역할
이 지역의 만세운동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수촌·제암리의 교회, 천도교 등 여러 종교 공동체가 연락과 조직의 거점이 되어 전개되었고, 그만큼 큰 희생을 치렀습니다. 수촌교회는 오늘도 초가 예배당을 보존하고 있으며, 본부는 2021년 이곳에서 독립운동가 김응오 선생의 후손 증언을 영상으로 기록했습니다.
- 2019년 4월
다시 걷는 길 — 화성3·1운동만세길
3·1운동 100주년을 맞아 화성시는 1919년 4월 3일 만세꾼들이 걸었던 길을 되살려, 방문자센터(우정읍 화수동길 163)를 기점으로 독립운동가의 집터와 생가, 횃불시위 장소, 면사무소·주재소 터 등 15곳을 잇는 약 31km의 「화성3·1운동만세길」을 열었습니다.1
